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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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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57ud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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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충남송환추진위원회가 결성된 7월 12일, 최일헌 선생은 자기 비판을 시작했다. 2차 송환의 첫발을 떼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과오부터 비판하는 것이라고 몸소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최 선생의 얼굴은,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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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4사단 18연대에 편입되가지고 625전쟁시기에는 낙동강까지 갔다왔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해 들어갔지. 미군들이 평양을 점령하고 두만강으로 간 다음이라 산으로 해서 후퇴를 했어. 강원도 철원으로 해서 평강과 철원 이 일대를 해방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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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도에서 태어난 최일헌(76세) 선생은 1946년 중국의 팔로군(전후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17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그 '넓은' 중국을 해방시키고 조선인민군으로 편입, 한국전쟁시기에는 낙동강까지 남하했다. 그리고 1958년, 29세의 청년은 두살배기 아들과 임신중인 아내를 남겨 놓고 조국통일사업에 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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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교도소에서 전향을 하고 대전교도소로 이감이 됐다. 그리고 1985년 광복절 특사로 8월 14일 출옥했다. 절의 주지스님의 보증으로 가출옥한 최 선생은 절에서 혼자 살았다. 그리고 지금의 '안식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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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교도소에서 전향을 하고 대전교도소로 이감이 됐다. 그리고 1985년 광복절 특사로 8월 14일 출옥했다. 절의 주지스님의 보증으로 가출옥한 최 선생은 절에서 혼자 살았다. 그리고 지금의 '안식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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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접선에 못 만났으니까 3차 접선에 사람을 보내 달라고 무전이 왔어. 내려갔지. 밤이니까 아무것도 안보이지. 마지막 접선으로 '이항구씨, 나오셨어요'하니까 경찰들이 집중 사격을 한거야. 총을 맞아서 움직일 수도 없고, 수류탄 같은 거 빼지지도 못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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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접선에 못 만났으니까 3차 접선에 사람을 보내 달라고 무전이 왔어. 내려갔지. 밤이니까 아무것도 안보이지. 마지막 접선으로 '이항구씨, 나오셨어요'하니까 경찰들이 집중 사격을 한거야. 총을 맞아서 움직일 수도 없고, 수류탄 같은 거 빼지지도 못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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