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 퇴직연금 '디지털전환(DX)'...시중은행-RA전문업체 '합종연횡' 격전
4대 시중은행과 RA전문업체 투자일임 협력 현황
올 하반기부터 열리는 퇴직연금 로봇어드바이저(RA) 일임을 앞두고 시중은행과 전문업체간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이 모두 전문업체와 손 잡으며 차별화 경쟁이 본격화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퇴직연금 일임형 서비스' 도입을 위한 RA 제휴업체 선정에 돌입했다. 최대 3개 회사와 손 잡을 방침이다. 협력사 조건은 △투자자문업 또는 투자일임업을 인가·등록하고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사무국에 퇴직연금용 알고리즘 시스템 심사 중인 회사나 기관이다. 5월 중 우선협상 대상자를 가린다.
우리은행 역시 RA 전문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RA 일임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업체 선정을 포함해 (여러 방식을) 종합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하나은행은 올해 2월 파운트와, 신한은행은 지난 달 쿼터백·콴텍과 제휴해 퇴직연금 RA 일임 서비스를 진행키로 협약을 맺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합류하며 4대 시중은행이 모두 퇴직연금 RA 일임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국내 퇴직연금 운용은 약 400조원 규모로, 정부는 하반기부터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통해 이중 일부에서 RA 투자일임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 계획이다. 그동안 포트폴리오 추천이나 자문 역할만 해온 RA 서비스에 매수·매도·리밸런싱 일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시중은행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금액 기준 절반 이상을 운용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은 증권사와 달리 투자일임 라이센스를 받을 수 없어 하반기부터 열리는 RA 투자일임 시장에서 불리한 처지다. 은행 관계자는 “RA 투자일임이 가능해지며 전문업체와 손을 잡고 진출하는 것이, 라이센스가 없는 은행으로서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RA 투자일임에 뛰어들며 전문업체에는 기회가 열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센터에 따르면 2023년 말 국내 RA 시장 규모(운용 금액 기준)는 1조원 이하로 2022년 1조 5000억원 이상이었던 것에 비해 급격히 축소됐다.
RA업체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 운용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개입하는 자산관리 상품이었지만 디지털화가 전개되는 것”이라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비이자수익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전문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도 있다. 올 상반기 은행권을 강타한 홍콩 ELS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자산관리 분야는 불완전판매 등 분쟁소지가 크다. 은행 관계자는 “RA 투자일임도 소비자 보호장치를 정교하게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