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포탈을 시작페이지로
 
커뮤니티 (185건)

품위를 상실한 동물이 되시렵니까, 자아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  
품위를 상실한 동물이 되시렵니까, 자아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글쓴이 : 지만원조회 : 938 국민여러분, 품위를 상실한 동물이 되시렵니까, 자아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격조와 프라이드를 자랑하던 강남부자들이 갑자기 공짜정책에 짐승이 되었습니다. 내 능력, 내 잘난 맛에 살던 격조 높던 강남시민들이 갑자기 ‘남이 잡은 고기’ 서로 독차지하려고 싸우는 저속한 하이에나 떼가 되었습니다. 송파구 성은어린이집, 공짜라니까 3,800명의 대기자(Waiting Line)들이 늘어섰습니다. 궁핍하지도 않고 애기가 두 살이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 없었던 엄마, 주변 엄마들한테 “왜 공짜인데 준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느냐, 일단 신청해 놓으면 35만원의 지원금이 나오는데!” 핀잔을 받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엄마 품을 떠난 이이는 차디 찬 기계에 올라타 울기만 합니다. 그 순간부터 애기는 따뜻한 손맛을 떠나 낯선 보모, 표독한 보모일 경우에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됩니다. 훈련 안 된 대부분의 보모는 어린아이들이 귀찮다며 수면제를 먹입니다. 보도들로 도배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인텔리 강남엄마가 그만 공짜선동에 유혹되어 2살짜리 애기를 무책임한 보모들에 맡깁니다. 모든 국민을 공짜로 내모는 정부 때문에 엄마의 정신 병들고 애기도 파괴됩니다. 공짜요? 사람 파괴하는 무서운 기계요 단두대보다 더 혐오스런 기계입니다. 대한민국에 공짜만 달라고 꿀꿀대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면 그게 돼지우리지 무엇이 돼지우리란 말입니까? 1948년부터 미국에서는 골드러시가 시작되고, 15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공짜러시’가 시작됩니다. 어느 ‘러시’가 더 생산적인가요? 경상도 산골 염소할머니, 젊어서 공사판 막일을 하셨고 지금은 40마리 염소를 키우시더군요. 고생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할머니가 평생 모은 1억원을 고등학교 장학금으로 냈습니다. “아플 때 쓸 병원비는 남겨 놓았다. 정부지원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살다 가는 게 내 소원이다.” 자부심(self-esteem), 내 손으로 자식 키우고, 내 돈으로 학교 다니는 자식 밥 먹이겠다는데 어째서 정부가 개입하여 나와 내 자식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는 말입니까? ‘한 달에 100만원을 벌고 그래서 정부가 조금 보태준다 해도 나는 국가에 대해서만큼은 세금을 내고 싶다.’ 단돈 천원, 단돈 만원이라도 세금을 내야 떳떳한 국민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80%가 세금을 냅니다. 선진국 거리에 팝콘 카를 끌고나와 장사하는 사람들도 세금을 내지 않으면 자격이 없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20%만 세금을 냅니다. 내가 떳떳하게 세금을 내고 싶다는데 어째서 정부가 방해를 합니까? 세금을 내야 떳떳하고 자부심을 갖고 애국심과 공공의식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까? 국민 80%가 ‘열외자’(Out-lier)라는 것은 국민 80%가 국가운명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외자는 이방인 또는 공짜 바라는 꿀꿀이이지 국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방의무는 ‘국민개병제’입니다. 납세의무도 ‘국민개세제’여야 합니다. 국민여러분, 이 제안이 어떻습니까? 세금 내는 20%의 부자 주머니를 더 털어 공짜로 살자? 안양1번가에 고급 화장지를 만들던 ‘삼덕제지’가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회사였지만 2003년 어느 날 월남처럼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멸됐습니다. 유서 깊은 삼덕제지, 80여세의 그 주인은 리어카를 끌면서 자수성가하여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 7월 직장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하면서 45일동안 공장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요란한 소음을 내며 ‘오너가 다이너스티를 타고 다니고 룸살롱에서 고급주를 마신다’는 등의 비난을 하면서 오너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의 요구조건들을 내세웠습니다. 근로자들로부터 늘 고마운 마음을 받아야 할 오너는 갑자기 배은망덕한 근로자들의 배신에 치를 떨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에게 그동안 일자리를 제공해준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은밀히 재산을 정리하고, 60년 동안 경영하던 제지공장 부지 4,364평을 노조가 손쓸 틈 없이 전격적으로 안양시청에 기증하고, 영원히 한국을 떠났습니다. 근로자들은 졸지에 일자리는 물론 데모할 공간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근로자들만 생각하면 10년 체증이 뚫립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노조들에 의해 1970년 이후 수십만 중소기업과 수천만 일자리가 소멸되었습니다. 공짜로 사는 80%가 자기들을 먹여 살리는 20%의 부자들을 쳐부수고 빼앗아 나누어 갖자 합니다. 다 같이 뜯어먹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하이에나보다 더 악독한 북한의 거지 떼들의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80%의 국민은 삼덕제지 근로자, 20%의 부자는 삼덕제지 전회장의 입장이 될 것입니다. 그 20%는 언제나 해외로 재산과 몸을 옮길 수 있지만 80%는 여기에 남아 죽창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월남이 지구상에서 소멸되던 1975년 4월 30일, 소수의 월남군 장교들이 미해군대학원에서 석사과정들을 밟고 있었습니다. 월남이 패망하자 이들은 두고 온 가족들 안위에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동정을 받고 도움을 받아야 할 이 월남 장교들에게 미국정부는 냉혹했습니다. 일시에 모두 퇴학을 당했습니다. 국제사회란 이렇게 냉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적 없는 고아들이 되어 미국 사회를 떠돌았고, 월남에서 월맹에 충성하던 배신자들은 월남의 부자-식자들과 함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2012.3.6.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양승오 과장, 박주신MRI사진 문제제기     |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양승오 과장, 박주신MRI사진 문제제기 글쓴이 : 육혈포한방… 조회 : 43 추천 : 13 "의학적 견지에서 27세남자 MRI로 볼수 없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양승오 과장, 강용석 의원 팬 카페에 문제 제기 “정말로 의학적 견지...

 

박원순시장 아들 박주신의 병역비리는 끝나지 않아[이계성]     |  
김봉건 (2012.02.27 10:15, Hit : 3, Vote : 0) 박원순시장 아들 박주신의 병역비리는 끝나지 않아[이계성] 박원순시장 아들 박주신의 병역비리는 끝나지 않아 [이계성 칼럼] 강용석의원에게 영원히 정계 떠나라고 한 박원순은 대한민국 떠나야 할 사람 특이체질이라 디스크에도 뛰어다니는 박주신 군대 입대하면 된다. 도덕적으로 시장자격 상실한 박원순은 인간이라면 스스로 사퇴해야 박원순시장 아들 박주신의 징병검사규정 위반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 MRI를 바꿔치기 하지 않았다고 해서 병역비리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와야 판가름이 난다. 박원순 시장은 1967년 개정된 병역법의 부선망독자(父先亡獨子부친을 일찍 여읜 독자)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보충역 처분 혜택을 받았다. 형제가 2남6녀 인데 박 후보가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돼 이른바 '육방(6개월 방위)으로 빠지는 특혜를 누렸다. 작은 할아버지는 행방불명 상태고, 그 아들인 당숙은 사망 상태인데도 박원순은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돼 독자가 됐고, 형도 자동 독자가 돼 형제가 모두 병역 특혜를 받았다. 박원순은 기억조차 없는 일제 때 실종된 당숙의 자식으로 호적을 옮긴 것이다. 2월25일 강용석의원은 팟캐스트 '저격수다' 공개방송에 출연해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굉장히 확실하고 문제가 될 만한 게 많았는데 하필 여기에 매달리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왔던 게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해 안타까웠다"며 "박 시장이 '저를 용서한다'고 했는데, 이런 표현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했다. 강 전 의원은 "시장 되자마자 군대를 뺀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박원순이 국민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지난주에도 4박5일 교회 수련회를 다녀올 만큼 멀쩡한 아들이 원래 현역이었다가 4급으로 뺏으면 국민께 용서를 구하는 게 당연한 거지 어떻게 저를 용서한다고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고 말하자 방청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은 대를 이어 그의 아들 박주신도 4급 판정을 받고 군 면제를 받은 것이다. 디스크 4급 판정이면 걷기도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내리고 뛰어다니는 동영상이 제보되고 있다. 더구나 그의 신체검사 과정에는 의혹투성이다. <박주신의 징병검사규정 위반 내용>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은 2011년 12월 27일 재검을 통해 공익판정을 받았는데 징병검사 규정을 위반하였다.1. 징병검사규정(병무청 훈령) 제33조 제3항 위반“징병검사의사는 병사용진단서와 같이 제출되는 방사선 영상자료의 촬영병원이 병사용진단서 발행병원과 서로 다른 경우에는 자체 방사선촬영기를 활용하여 진위 여부를 확인한 후 판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주신은 신체검사 재검 시 MRI는 혜민병원에서 발급 받았고 진단서는 자생의원에서 발급받았다. 이렇게 진단서 발급 병원과 MRI를 촬영한 병원이 다른 경우 병무청에서 다시 MRI를 촬영한 후 판정을 해야 하지만 병무청은 CT 촬영만 하여 판정하여 규정을 위반했다. 2. 징병검사규정(병무청 훈령) 제33조 제4항 위반“병역비리 범죄와 관련된 의료기관 또는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는 참조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박주신의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는 자생병원 김봉룡 의사다. 그는 1997년 국군수도병원 신경외과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의병전역의 대가로 금품 받고 뇌물수수죄로 징역 1년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병무청은 이런 진단서를 가지고 공익판정을 하여 규정을 위반 하였다.3. 징병검사규정(병무청 훈령) 제76조 등 위반“징병검사규정 제65조에 따라 질병 또는 심신장애의 사유로 병역처분이 변경되는 다음 각 호의 사람에 대한 병역면탈 여부를 확인조사하기 위해 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별로 병역처분변경 심사위원회를 둔다”고 되어 있다. 현역병 입영대상인 사람이 신체등위 4급 내지 6급으로 판정된 경우 제76조부터 제80조까지에 징병검사 규정은 병역처분변경 때는 심사위원회를 열어 병역면탈 여부를 심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병무청은 심사위원회를 열지 않고 4급 판정을 하여 규정을 위반하였다. 4. 박주신은 진단서 발급받은 병원과 MRI 검사한 병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병무브로커의 개입이 여부, 병무청이 박주신 재검 시 규정을 위반한 이유, 명백한 규정 위반에도 불구하고 병무청이 재검을 안 하는 이유 등의 확인이 필요하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양자를 가서 형제가 병역을 면제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박주신도 그의 부친이 군대를 보내지 않으려고 잔꾀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디스크로 4급을 받을 정도면 움직이기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다. 그런데 박주신은 뛰어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MRI 필름이 박주신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해서병무비리 의혹이 해소 된 것은 아니다. 병무청 4급 판정에 대한 의혹은 감사청구에 대한 감사원의 결과가 나와야 안다. 박원순의 학력위조 박원순은 서울시장 후보당시 학력을 위조하여 당선되었기 때문에 강용석 의원의 고발을 받고 있다.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자신의 저서의 저자 소개란에서 ‘런던대학 정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위가 아닌 ‘디플로마(Diploma)’를 취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런던대학에서 디플로마는 대학원 입학 자격증, 즉 석ㆍ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자격증을 의미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 이란 것도 거짓말이고 연수생이었다고 한다. 서울법대 입학도 거짓말이고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제적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1000만의 서울시장이 학력을 위조한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박 씨가 후보 사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등장했다.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신임 국무총리로 임명했으나 곧 학력위증 논란이 일었다. 장상총장의 ‘프린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Ph.D)’ 학력이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졸업’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 명문인 프린스턴 대학교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과는 별개의 학교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것처럼 학력을 부풀렸다’는 비판이 일자 그는 “한글 번역상의 오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었고 결국 장상총장은 자진사퇴 했다. 박원순 시장은 상대후보 500만원 뷰티클럽 다닌 것을 1억 원짜리로 선전 시장에 당선되고 학력을 위조하여 시장에 당선 되었다. 대법원판결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선거법위반으로 당선된 시장당선은 무효다. 특이체질이면 군대 가야 2월2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주신 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MRI 사진은 본인의 것이 맞다”고 발표한 뒤 전여옥(53) 새누리당 의원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전문가들은 4급 판정을 받을 상태면 기어 다니고 몹시 고통 받는다고 하는데, 특이체질이라 고통을 받지 않으니 군대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MRI 때문에 군대 면제 받았는데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하니 군대에 가도 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의사가 디스크라는 판정을 했지만 군대 갈 정도인지 아닌지는 병무청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박주신의 이상한 신검과정의 의혹과 그 의혹을 그대로 덮고 병무청이 4급 판정을 했기 때문에 병무청에서 공개 신체검사를 하여 병역판정을 해야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서민자녀는 전방을 지키고 서울시장아들은 공익요원으로 배정하는 병무행정은 쇄신되어야 한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부자가 국방의 의무를 기피한 사람에게 주는 자리가 아니라 1천만 서울시민의 사표가 될 사람이 해야 할 자리다. 박원순 시장은 북한 평양시장은 몰라도 서울시장으로는 부적격자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사퇴해야 할 일이지만 공산당들은 철면피다. 박우원순 곽노현 같은 종북세력들은 법의 힘으로 끌어내는 길 밖에 없다. 두인간은 다 선거법을 위반했다. 법원의 냉철한 심판을 촉구한다. 이계성<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반교척) 공동 대표> <자유대한 지키기 운동본부(자국본) 공동대표> <대한민국사이버안보국민연합연구위원>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의혹 지금 부터가 시작 (노상)     |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의혹 지금 부터가 시작 (路上) 글쓴이 : 路上 조회 : 931 추천 : 115 강용석이 이 사건에 씨를 뿌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뜻을 같이한 많은 우국지사들이 물을 주고 같이 가꾸었고 그 뜻은 무럭 무럭 자라서 결실을 맺고자 하였는데 갑자기 씨를 뿌린 당사자인 농부가 자기가 뿌린 씨라고 해서 그동안 같이 물주고 가꾼 사람들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한채 자기 혼자 대표로 그 씨를 갈아 엎어버렸다. 그동안 진실규명을 위해 시간과 정열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심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백기를 들어 버렸다. 영하 수십도의 추운날씨에 입술이 얼도록 한길가에 서서 저녁 늦도록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 주던 많은 사람들의 뜻도 물어 보지 않은채 말이다.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 외공만 있고 내공은 전혀 없는 입만 살아 있는 어린 애송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앞으로 남아있는 다른 비리들을 파헤쳐 바로잡아 볼 기력도 없어져 버리고 세상은 우리의 사회정화를 위한 이러한 운동에 더욱더 깊은 냉대를 보일 것이다. 이게 이번 강용석이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부작용이 될것 같다.세브란스 병원에서 졸속 007 산다볼 작전같은 공개인지 개공인지 하여튼 웃기는 신검은 그냥 대중들에게 눈가리고 아웅하는 걸로 때우고 거의 같은 시간에 뭔가 강용석과 뒷거래가 있었는 듯한 냄새가 난다. 생각할수록 신경질이 난다. 이게 무슨 김정일이 승차한 열차 여행 추적하는 것도 아니고 21 세기의 민주국가 중에도 방종에 가깝도록 민주화된 백주의 한국 남한 땅, 그것도 가장 개화된 서울 땅에서 "박주신 '이란 어린 친구의 몰골도 제대로 확인 할 수 없게 13분 만에 극한 통제 속에서 공개 아닌 공개 신검이 이루어 졌다는 것은 독재 중의 상 독재고 "악" 소리도 못지르고 당한 폭력관행이다. 이게 바로 독재다. 미국산 쇠고기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촛불을 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혹, 강용석 본인과 본인 가족에 대한 살해 위협이라도? 아니면 옛날 박원순과 같이 참여연대 하던 시절에 강용석이 박원순이에게 무슨 큰 약점이라도 잡힌게 있었나?? 바로 신검 전날까지 기세 등등하던 강용석의 행태로 봐선 정말로 그리 쉽게 꼬리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인데.... 어쨋든 어린 강용석이 앞장세우고 깃발 들고 그를 따랐던 우리들은 이제 강용석 보다 더 기개가 웅천하는 수많은 강용석을 앞세우고 깃발 더 높이 세우고 박원순 아들 병역 비리를 국회 청문회에 세울때 까지 계속 파헤쳐야 한다. 이렇게 이런식으로 그만두면 앞으로 이러한 냄새짙은 비리를 보아도 그냥 무기력해져 버린다. 불감증에 걸리게 된다. 사회정화 차원에서라도 더 힘차게 여론을 조성하여 끝까지 마무리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 모두를 영원한 " 강용석 졸개" 로 볼 것 같다. 옛날 장날에 애들 코 묻은 돈 앗아 가던 그런 야바위꾼에게 당한 기분이다. 엊그제는 대한민국 5 천만이 모두 다 눈뜬 봉사가 되어버린 날이다...

 

가슴이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     |  
글쓴이 : 개혁 조회 : 321 .가슴이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 .. 신검하는 사진, 그 귀를 보고 목덜미를 보고 옆에 내린 머리등을 보니 박주신이가 아니라고 하는 제보가 설득력이 있고, 세브란스 병원 직원의 양심고백 등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여러분, 빨갱이들이 ...

 

박주신 MRI 촬영, 2곳 이상에서 강용석팀 참관하에 다시하라     |  
글쓴이 : 지만원 조회 : 2,999 박주신 MRI 촬영, 2곳 이상에서 강용석팀 참관하에 다시하라 박주신이 오늘 오후 2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MRI를 촬영하고 3시 경에 그 결과를 기자들에 밝히겠다고 한다. 몇 개의 병원에서 촬영하느냐, 어느 어느 병원에서 촬영하...

 

박원순의 미스터리와 강용석에 대한 유감     |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4421 박원순의 미스터리와 강용석에 대한 유감 진실 (2012-02-22 08:32:35) 빨갱이가 된 나라에서 박 원수 ㄴ ...

 

우리의 희망, 박근혜가 아니라 강용석이다!     |  
글쓴이 : 지만원 조회 : 77 우리의 희망, 박근혜가 아니라 강용석이다! 강용석 한 사람이 176명 근혜당 의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가장 먼저 김문수 같은 사람은 안철수를 부러워하면서 그에게 국회의원 자리 30 여석을 뇌물로 주고 모셔오자고 까지 했다. 박근혜는 안철수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용석은 박원순이 거짓말쟁이라는 것, 안철수 부부가 서울대에 남긴 이상한 족적을 파헤치고 급기야는 2월 13일, 그를 서울지검에 고발한다. 고발내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첩러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횡령)혐의와 '조세범처벌법' 위반(증여세 포탈) 혐의다. 안철수는 물론 안철수연구소 직원 125명을 동시에 고발한다. 안철수의 배임-횡령 혐의는 죄질이 매우 나쁜 모양이다. 안철수는 빨갱이다. 뻥을 잘치고 사람을 속인다. 언론플레이도 능수능란하다. 이런 사람이 사회에서 혜성의 대우를 받아왔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인간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매장시키는 일은 참으로 훌륭한 애국행위다. 한나라당 176명 중에는 이런 일을 해낼 인물이 없다. 강용석은 박원순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해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냈다. 박원순 아들이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로 분류됐는데 최근 5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아들 박주신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확보했다. 500만원 중 200만원은 우리 500만야전군이 그의 훌륭한 노력에 동참하는 의미이서 보탠 것이다. 감사원은 이제 박원순이 그 아들과 관련해 무슨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조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강용석은 그 감사원의 조사과정을 일일이 모니터링 할 것이다. 근혜당의 그 누구도 이런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우리는 강용석 1명이 근혜당 176명이 생각조차 먹지 않은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용석은 곽노현의 목줄도 함께 물고 있다. 그의 장남은 손가락 인대 파열로 병역 4급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 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는데 이에 더해 그의 어머니가 과장으로 있는 일산병원에서 근무했다는 것이다. 손가락 인대가 파열되면 손가락이 3분의 1만 구부러져 정상적인 컴퓨터 타이핑이 불가능하지만 곽노현의 장남은 로스쿨에 다니면서 멀쩡히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잘한다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안철수와 박원순과 곽노현은 이 시대 최악의 적이다. 강용석은 이 세 사람의 목줄을 바짝 물고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반면 박근혜당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한 가지만 말해보자. 근혜당은 빨갱이 중 최악의 빨갱이인 백태웅을 모셔오기 위하 안감힘을 쓰고 있다. 백태웅은 누구인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위장취업을 했다. 사노맹을 주도하여 7년 도피에 7년 감옥생활을 했다. 이정로라는 가명으로 “무기를 만들어 이 나라를 전복하고 적화통일을 이룩하자”며 수많은 노동 잡지들을 통해 노동자들을 선동해온 무서운 내적이다. 강용석과 박근혜를 놓고 보자. 누구에 희망이 있는가? 우리는 강용석에 희망을 걸고, 힘을 실어주고, 그가 아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우리들은 오랜 동안 박근혜에 희망을 걸어왔다. 박근혜에 치명적인 약점들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향으로 자위적인 해석을 하면서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가 보이는 행동을 보면 내공이 없고 수상하며 이 나라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을 한다. 막막하기만 한 이 때에 강용석이 보이고 있는 행동들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역사와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싸우고 있고, 강용석은 가장 위험한 빨갱이들을 때려눕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2.2.1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나라가 亡하려면 이렇습니다.★     |  
★나라가 亡하려면 이렇습니다.★ 글 ddictator * 無償福祉는 共産主義하자는 것* 옛날 옛적 어느 때. 은행나무에 강력한 害蟲이 나타나 지구상 모든 은행나무를 무지막지로 파 먹어 은행나무 모두가 죽었습니다. 더 먹을 것이...

 

근혜당은 민주당보다 더 빨갱이당!     |  
근혜당은 민주당보다 더 빨갱이당! 글쓴이 : 지만원조회 : 719 근혜당은 민주당보다 더 빨갱이당!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가 원칙 없이 당을 고치고 있다. 국민 누구도 박근혜가 당을 고치는 데 있어 그 기준과 원칙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냥 빨갛게 변화되고 있는 모습만 보여준다. 지난번에는 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라는 말을 버리려 했다가 반발여론이 강하게 일자 보수라는 단어는 처마 밑에 보일락말락하게 걸어놓고 당의 내용을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으로 꽉 채웠다. 재벌들을 격려하고, 연구개발비를 늘리게 하여 ‘미래성장동력’을 개발케 하는 것이 경제정책 제1의 항목인데 그런 건 전혀 없고, 근혜당은 재벌을 때려잡고 온갖 종류의 돈 잔치를 벌여 국가경제를 파멸시키려 한다. 남북이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빨간색을 빨갱이로, 파란색은 애국을 의미하는 색깔로 구분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근혜당은 당 로고의 핵심 색깔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여기까지를 보아도 근혜당은 보수당이 아니라 진보당이다. 그런데 빨갱이 중의 빨갱이인 백태웅(가명 이정로)을 영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으니 이제 근혜당에는 더 기대해 볼 것이 없게 됐다. 참으로 허탈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의 가장 강력한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을 제거하기 위해 빨갱이 중의 최고 빨갱이요 폭력에 의한 국가전복을 신앙으로 하는 백태웅을 등용하겠다는 것이다. 백태웅에 비하면 문재인은 베이비다. 박근혜가 백태웅을 데려오겠다는 의지의 표현 자체로 박근혜는 용서될 수 없으며,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문화일보(2.6) 보도 내용 “새누리당이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 나설 영입대상으로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만든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를 지목, 접촉에 나섰다. 백 부교수 영입에 성공할 경우 백 부교수의 출신 고등학교가 있는 부산에 출마를 시켜 민주통합당(민주당)의 ‘문재인 바람’에 맞서 낙동강 전선 사수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백 부교수는 1984년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른바 ‘학원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유시민 진보통합당 대표와 함께 구속됐다. 1991년에는 박노해(본명 박기평)씨 등과 함께 사노맹을 조직, 중앙상임위 위원장을 맡아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법원은 사노맹에 대해 “노동자 계급 중심의 무장봉기를 통한 정권 타도와 근본 혁명을 꾀한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 조직”이라고 판단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특사로 풀려나 미국 유학을 떠나 노트르담대에서 2001년 법학 석사학위를 받고 2003년 미국 뉴욕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박사학위를 받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조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백태웅은 누구인가? 백태웅의 가명은 이정로, 위장취업에 뛰어들었고 수배생활 7년, 감옥생활 7년으로 알려진 인물로 노동해방의 선도자이며 많은 ‘노동지’들에 기고를 하는 문필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월간노동해방문학 89년 5월호에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전환”이라는 45,000여자에 해당하는 장문의 논문을 썼다. 그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부르고, 민중항쟁으로 부르는데 대해 반대하면서, 광주혁명, 무장혁명, 파쇼정권타도를 위한 무장봉기, 반란, 주권탈취의 한판 싸움 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가 쓴 글을 발췌 소개한다.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모든 좌익들에 전파하여 이 나라를 파괴해 버리자는 그야말로 국가전복 선동가요 빨갱이 중의 빨갱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어휘부터가 소름끼친다. 어찌 감히 이런 사람을 박근혜가 탐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아래에 소름끼치는 그의 글을 소개한다. ----------------------------------------------------------------------- 제목: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전환(월간노동해방문학 89년5월호) 필자: 이정로(노동운동가) 백태웅=이정로 글머리에 "폭도들은 들어라! 너희들은 완전 포위되었다.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 "와서 죽일테면 죽여라! 이놈들아! 네 놈들한테는 죽어도 항복은 못한다!" "시민군들은 얼른 날이 새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은 우리의 기대처럼 빨리 오지 않았고 얼룩무늬 독사의 혀만이 낼름거리고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결코 새벽은 오지 않았고 영영 새벽은 죽어버렸다. 계엄군의 사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월 그날’ 64면,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 수천 광주 시민의 꽃넋과 함께 영영 죽어버린 새벽!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 .그러나 아는가! 광주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민중의 영웅적 무장봉기. . . . 망월묘지의 언덕바지에 묻힌 원한의 주검들! 감형과 특사로 살아남은 동지들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그날의 열기와 살 떨리는 분노! 그리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실성하여 껍데기만이 남은 사랑하는 우리의 동지! 아직도 무장봉기의 도시 광주는 목 놓아 울부짖고 있다. . . 피 맛을 본 미치광이 공수부대들이 우리의 형제와 아들딸들을 어떻게 짓밟고 도륙했는지를 볼 때마다 9년간의 세월을 건너뛴 오늘이지만 우리의 가슴은 분노로 들끓고, 어금니 앙당물리고 양주먹이 저절로 굳게 쥐어진다. . . 광주봉기는 민족민주혁명의 교과서 광주의 무장봉기는 민족민주혁명의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광주봉기는 당면 혁명의 타도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민중의 대체권력은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보여준다. 광주봉기는 남한 민족민주혁명의 핵심 고리가 민중의 무장에 의한 낡은 권력의 전복과 새로운 권력으로의 대체임을 보여주며 그러한 경로를 알려준다. 우리는 광주무장봉기를 통하여 민족민주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배워야 한다. 광주의 노동자와 민중은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를 몰고 나오고 파출소의 무기고를 덮쳐 캐리버50을 꺼내오고, 화순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끌어다 싣고 왔다. 권력의 총구가 민중의 가슴팍을 겨누고, 대검에 찔린 민중의 배에서 창자가 꾸럭꾸럭 허리 아래로 흘러내릴 때 민중의 뼈저린 자각은 저항의 총구에 불을 붙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권력이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존재라는 깨음에 신나를 몸에 끼얹고 활활 타오르는 노동자에게도 광주의 경험은 다시 살아나야 한다. 농약을 들이마시고 절명하는 농민들에게도 광주의 희망은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광주봉기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뜯어고치고 알짜배기 혁명의 교훈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이다. . . 광주무장봉기의 중심은 노동자계급이었다 "이때 갑자기 금남로 끝부분인 유동 쪽에서 수많은 차량들이 일제히 비상라이트를 켜고 동시에 경적을 울리면서 도청을 향해 돌진해 왔다. 맨 선두에는 대한통운 소속 12톤 대형트럭과 고속버스, 시외버스가 앞장섰다. 대형트럭 4대, 시내외버스 11대가 선두에 섰고, 그 뒤로 2백여 대의 택시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뒤따르고 있었다. 트럭 위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올라서서 태극기를 흔들어 댔으며, 버스 속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시민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순식간에 시위대열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다." 1980년 5월20일! 오후 7시! 노동자계급은 이렇게 광주 민중봉기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5월18일까지만 해도 시위대열의 중심은 학생이었다. 14, 15, 16일의 민족민주화 성회를 주도하던 학생회 간부들보다도 역사적 현장에서의 정치적 각성을 받은 학생대중들이 가두투쟁의 중심이었다. 전남대 앞에서의 첫 번째 충돌과 광주신역과 가톨릭센타 앞에서의 두 번째 전투에 이르기까지 광주지역의 혁명적 학생들은 단호하게 투쟁의 선도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5월19일부터는 학생시위가 민중항쟁으로 변화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에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이미 학생들의 숫자보다, 소상인과 가게종업원, 노동자의 비중이 월등히 커졌다. 학생시위가 민중봉기로 전환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 . 그리하여 5월20일 오후 2시부터 무등경기장에는 택시운수노동자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군저지선의 돌파에 앞장서자’고 결의하면서 2백여 대가 무리지어 도청을 돌격해 가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 운수노동자의 결의에 고무된 박남선, 오한균 등의 노동자와 혁명적 민중은 동운동 고가도로 밑의 주유소에 본부를 정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파괴, 점령하고 고속도로를 차단한 다음 모든 차량을 징발하는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화물트럭과 대형차가 선두와 양 옆을 호위하고 소형택시들이 대오를 이루면서 도청을 향한 '차량돌격대'를 편성하게 된 것이다. 이 날의 노동자계급의 대진군을 부르주아적 언론은 '차량시위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위대'가 아니라 '전투부대'였고 '돌격대'였다. 그러한 차량돌격대의 중책은 바로 노동자계급이었으며 혁명적 민중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저지선 돌파작전에 함께 하였다. 5월20일 저녁부터 21일 새벽에 걸친 처절한 혈투는 마침내 반동권력의 하수인인 계엄군의 본색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게 만들었다. 계엄군은 칠흑 같은 밤공기를 가르며 민중의 가슴에 총탄을 쏘아보내기 시작하였다. 일제사격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자 차량돌격대를 구성한 핵심부대원은 무장혁명군으로 변화해 갔다. 5월 21일 오전에는 아세아자동차에서 APC장갑차 3대를 포함한 3백60여 대의 차량이 징발되었다. 무기를 탈취한기 취하여 나주 방면을 향하는 7대의 버스에는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돌격대가 되어 있었다. 나주경찰서의 무기고에서는 Ml소총과 AR소총, 그리고 카빈소총 등이 광주로 반입되었다. 그리고 화순탄광의 돌격부대원들은 화순탄광 광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을 무기로 얻었다. 그리고 일부 광산노동자들도 무장혁명군대의 대오에 합세하였다. 광주의 노동자계급은 봉기에 뛰어들자마자 무장혁명군대라는 가장 핵심적 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무장혁명군의 계급 구성 '시민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무장혁명군의 중책은 노동자계급이었다. 5월21일 오후 4시쯤 광주공원에서 최초로 1백20여명의 무장혁명군이 편제되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산업노동자, 목공, 건설노동자들과, 구두닦이, 웨이터, 일용품팔이 노동자들이었다. 한편, 오후5시경 유동삼거리에서도 2백 명 가량의 무장혁명군이 편제되었다. 박남선씨를 총지휘자로 한 이 대오 역시 이미 학생들의 시위부대가 아니라 노동자가 중심이 된 민중의 혁명군이었다. 이들 무장혁명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금남로를 따라 도청을 향하여 진군하면서 광주시민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 부대는 광주공원의 무장부대와 합세하여 단일한 무장혁명군의 대오를 형성한다. 이들은 계엄군으로부터 노획한 무전기를 무전병 출신에게 맡겨 계엄군 이동 상태를 파악하고, 적십자병원을 본부로 하는 무장혁명군의 사령부를 건설하였다. 한편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에서는 기관총 2정이 도청의 계엄군을 향해 불을 뿜었고, 휘발유를 가득 실은 소방차가 도청정문을 돌파하기 위해 시민군의 엄호를 받으며 도청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계엄군은 도청을 버리고 총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와 혁명적 민중으로 이루어진 무장혁명군은 마침내 계엄군을 광주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치열한 전투의 과정에서 지휘체계를 갖춘 무장혁명군은 도청으로 집결하여 상황본부를 구성하고 무장봉기의 최선봉에 섰던 박남선이 상황실장이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혁명군대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시민군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박남선은 골재채취를 주역으로 하는 하층 쁘띠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그는 무장봉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의 중심적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상황실 산하에는 기동타격대와 경비대가 설치되었다. 기동타격대장 윤석루는 '자개조각공'인 노동자였으며, 경비대장 정화성은 식당종업원이었다. 기동타격대는 5, 6명을 1개조로 하고 각 조마다 조장 1명, 타격대원 4, 5명, 군용정차 1대, 무전기 1대, 개인 화기로 카빈소총1정과 15발들이 실탄 1클립씩이 지급되어 모두 13개조가 편제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제껏 천대받고 억압받는 노동자와 민중의 혁명적 군대가 억압의 군대인 계엄군을 몰아내고 민중의 혁명적 무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광주무장봉기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혁명적 무장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광주봉기 이후 기동타격대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밝혀진 구속자들 중 노동자간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성원의 76.7%나 된다. 광주의 무장투쟁에 가장 헌신적인 계급은 바로 노동자계급이었던 것이다. 광주무장봉기의 주력은 노동자계급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혁명적 학생, 소상인, 지식인이 결합함으로써 광주봉기는 계엄군을 몰아내고 일주일간 광주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노동자계급은 수적인 구성에서나 투쟁에서의 헌신성에서나 광주봉기의 주인공이었다. 이제까지 발간된 문헌에서의 광주봉기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봉기의 주체가 '민중'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 측면에서는 타당하고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의 대부분은 투쟁주력이 노동자계급이었다는 점을 빠뜨리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군대는 투항파 학생들이 수습대책위에서 물러나가게 하고 시민학생투쟁위원회를 가져오는 핵심적 물리력이었다. . "니미헐! 공수부대 들어온께 다 좆빠지게 도망가 버리드라! 그래갖고 우리 못배우고 가난한 놈들이 목숨걸고 공수들 몰아내 놓은게 슬그머니 들어와서 명분이 어떻고 폼잡다가, 또 밀고들어 온다니까 슬그머니 도망가 불드만!" "어따 두고 보라구.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 도망갔다 와서 몇시간씩 폼잡던 즈그들이 광주를 지켰다고 왕왕댈 것이구만!" (‘오월그날’ 89면) 초기의 민중적 봉기지도기관이 형성되는 과정 광주지역의 봉기 지도 기관은 사전에 만들어져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투쟁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가장 선진적인 부분이 봉기의 실질적 지도기관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투사회보’라는 지하유인물을 발간하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당시 유인물은 들불야학팀과 전남대 지하유인물 발간팀인 '대학의 소리'팀, 그리고 한국문화연구소의 문화패 광대팀 등의 것들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5월20일경 (자료에 따라 22일이라고 나오는 곳도 있다) 합류하여 투사회보라는 유인물을 발간한다. 투사회보는 문안작성조인 윤상원, 전용호를 비롯하여 필경조, 등사조, 종이보급조, 배포조 등의 체계를 갖추고 민중운동권과 학생, 노동자 등이 어우러져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광주봉기의 전 기간에 걸쳐 유일한 '봉기의 기관지'라 할 투사회보를 10호에 이르기까지 제작한다(10호는 미처 배포되지 못했다). 이들은 5월20일자에 발간된 투사회보 제1호에서 "무기제작, 무기고 탈취, 송곳, 칼 등으로의 개인적 테러를 가하는 방법" 등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이들 그룹의 주도하에 아세아자동차의 차량접수와 무기탈취 등의 무장 행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한편 대중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옥주씨와 차명숙씨 등의 여성대중 지도자가 등장한다. 봉기의 전개과정은 이처럼 평범한 대중을 순식간에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여 역사의 현장에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도청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던 5월20일 밤부터 5월21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가두방송을 통하여 전체 시위대를 총지휘한다. 그러나 이들은 5월 22일 '간첩이라는 선동'에 휘말려 계엄군에게 넘겨짐으로써 봉기의 지도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항쟁인가 무장봉기인가? 광주의 80년5월은 '민중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과연 우리가 광주를 '민중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에 머물러도 좋은가? 반동부르주아지들은 광주무장봉기의 이름을 '사태'라고 불러왔다. 그들은 일체의 민주화 요구의 의의를 부정했다. 오로지 폭도들의 난동이라는 시각을 강요해왔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주의적인 보수야당과의 절충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민주화운동'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합의를 도출해 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 이 말에는 민중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는가를 아예 언급조차 하기 싫어하는 부르주아계급의 위선이 숨어 있다. 그들은 '무장'의 문제에 대한 태도는 아주 빼버림으로써 광주봉기의 혁명적 의의를 삭제해 버렸다.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비열한 의도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민중항쟁'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광주의 민중은 분명히 '항쟁'하였다. 그러나 과연 광주의 노동자와 혁명적 쁘띠부르주아지(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생산자, 소상인, 봉급생활자, 자유직업자 등)의 무장부대는 계엄군의 만행에 못 이겨 들고 일어난 단순한 '저항부대', '정당방위대'였는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대로 욱하는 심정으로 무장을 한 '선량한' 폭도였는가? 광범위한 민중이 처음 시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분명 단순한 분노와 생명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무장이었다. 그러나 계엄군의 발포를 받으면서 광주민중은 이미 파쇼권력과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성을 확인하였다. 민중의 군대하고 선전해 오던 국군이 민중의 가슴에 총탄을 쑤셔박고, 민중의 정부와 관리라는 자들이 민중을 저주하여 죽음의 구렁텅이로 나날이 몰아넣는 것을 본 순간부터 민중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섰다. 그리하여 민중은 혁명군대가 되고 혁명적 봉기부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광주봉기를 '민중항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 표현은 민중이 무엇을 위해 투쟁했고 무엇을 위하여 죽음을 달게 안아 들였는지를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무장을 통하여 권력을 탈취하고자 하는 시도, 낡은 권력을 깨뜨리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고자 하는 광주민중의 영웅적 투쟁의지를 살려야 한다. '무장봉기'라는 규정은 광주민중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명칭이다. 광주 민중은 민주주의를 위한 '압력'을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도'하기 위해서 총을 들었다. 그것은 '시민항쟁'의 차원을 넘어서서 '반란'이요 '혁명'이며, '주권탈취'의 한판 싸움이었다. 광주의 민중은 '비굴한 타협'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총공격'의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그것은 '실패한 무장봉기'였다. 만약 광주지역의 승리가 전남 전체지역의 승리로 그리고 나아가 전국적 승리로 되었다면 위대한 민족민주혁명의 성취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처절하게 참혹한 실패를 정확하게 배우고 새로운 혁명의 첫걸음을 열기 위해서도 우리는 광주를 '무장봉기의 도시', 권력을 일시적으로나마 민중이 직접 소유한 소중한 경험을 가진 '혁명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봉기의 교훈은 권력의 문제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은 그 자체를 골백번 외쳐도 오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의 과제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제국주의의 지배에 도구가 되고 있는 반민주적이고 예속적인 권력을 타도해버리고 새로운 혁명권력을 수립하는 방법뿐이다. 수 십 년간 민주화투쟁이 계속되어 왔지만 80년5월에 와서야 비로소 낡은 권력을 향하며 직접적으로 총을 들이대고 주권을 탈취하기 위한 첫 시도가 전개되었고 그것만이 민주주의의 과제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남한사회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변혁 상의 과제는 수도 없이 많다. 광주봉기에서 미제국주의가 담당한 역할 "광주무장봉기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반제투쟁의 씨앗을 뿌렸다." 이것은 가장 자주 언급되어온 광주민중봉기의 교훈 중 하나이다. 미제국주의는 광주무장봉기에서 남한 국가권력의 충실한 동맹군의 역할을 했다. 미제국주의는 남한 민중의 벗이 아니라 파쇼권력의 혈맹임을 계엄군의 이동을 승인함으로써 분명히 밝혔다. 그들은 자신의 신식민지 지배를 지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남한 민중의 민주화 옹호자인 듯한 모습을 취했던 그들은 학살자의 피 묻은 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맞잡는 민중의 적인 것이다. 광주봉기는 미제국주의가 남한 권력을 통하여 우리 노동자와 민중을 지배하는 '간접지배'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 보였다. 당면 혁명과 무장봉기의 불가피성 광주민중에게 차량돌격부대를 조직하게 하고 M16과 캐리버50 장갑차와 다이나마이트를 들게 만든 일차적 촉발제는 계엄군의 잔인한 민중탄압과 우리의 형제와 아들딸의 가슴을 정조준한 공식발포였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끓어오르는 적대감은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계엄군의 공식발포는 다만 그러한 분노를 가리고 있던 차단벽을 제거해 주었던 것이었다. 초기의 시위는 단순한 항의에 그쳤지만 민중의 무장부대가 조직되면서부터는 혁명적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투쟁이 되었다. 파쇼권력은 발포로써 자신의 계급적 실체를 드러냈고 민중은 이제껏 가슴속에서 꼬물꼬물 일어나고 있던 갈증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혁명적 무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무장은 단순한 자위적 수단에 머무르지 않았다. 반동권력을 타도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발전해 갔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혁명적 민중은 권력하의 타협을 모색하던 부르주아적 자유민주주의자들과 쁘띠부르주아지 동요파들을 힘껏 박차버렸다. 군대를 민중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 광주무장봉기에서 계엄군은 무자비한 학살의 군대였다. 기다란 작업봉을 허리에 차고 M16에 대검을 곧추세운 계엄군은 일반 민중의 눈에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그들은 추호의 동요도 없고, 피도 눈들도 없으며, 명령에 눈깜짝도 하지 않고 복종하는 로보트처럼 보였다. 그러나 광주무장봉기가 진행된 불과 열흘간의 경험은 군대를 민중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이 결로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5월20일 광주지역 향토사단인 육군 제31사단이 공수부대의 지나친 진압에 반발하면서 계엄당국의 명령을 거부하여 전남북 계엄 분소장인 정웅씨가 경질되는 사태가 발생한 점이다. 이것은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고양되어 감에 따라 군대마저 영향을 받게 된다는 단적인 증거인 것이다. "오로지 누워서 잠 좀 잤으면 하는 바램뿐이었습니다. 그 옆에 누워서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은 총총히 빛나고 최루탄 냄새, 앵앵거리는 불자동차 소리, 시위대의 고함소리 특히나 그 전옥주라는 여인의 선무방송은 저희들도 고향생각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동안 광주시민에게 너무 무자비하게 구타를 했다고 후회도 되었습니다. 선무방송 소리에 나도 이곳을 이탈해서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내 고향에서 이래야만 하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보낸 화려한 휴가] - 한 공수부대원의 수기,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 47∼48면) 위의 인용문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공수부대 원은 시위진압의 격무 속에서도 이처럼 인간적 고뇌를 끊임없이 느낀다. 이들은 민중진영의 대오가 한없이 약할 때는 오만감과 각종 군 내부의 이데올로기 공작에 의하여 정확한 진실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민중의 투쟁역량이 성장해 가면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한다. '군대가 돌아서지 않으면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하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혁명 초기에 군대가 곧바로 총을 돌려 겨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중의 대오가 튼튼하고 저력이 막강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부터 군 내부의 동요는 격화된다. 실제로 5월 21일 계엄군의 퇴각을 전후해서는 계엄군 사병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틈서리를 벌려내어 군대를 민중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군대를 민중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은 일상적 시기에도 시작되어야 한다. 파쇼권력의 극악한 탄압 속에서도 가열차게 시위를 주도해 온 선진학생들의 영웅적 투쟁이 오늘날의 학생운동을 만들어 냈다. 마찬가지로 군대 내부에서의 투쟁을 조직하는 일도 지금 즉시 시작될 수 있다. 최근 군대와 전투경찰의 탈영과 양심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군대 내부에서 투쟁하는 것은 더욱 긴급하고 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병의 권익을 대변할 '사병대표자회의 소집'이나 '군대 내부의 민주화'를 내걸고 선도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인 시급하다. 군대생활 3년을 감옥생활로 대신하겠다는 각오를 갖는다면 이러한 투쟁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확대발전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장투쟁을 실제 기술적으로 준비하자 ! . . 초기에는 송곳이나 칼 등의 개인적 테러의 도구들이 주요 관심사였지만 점차 화염병과 차량, 장갑차 등이 등장하고 다이나마이트와 소총에 이어 기관총인 접수되어 활용되기에 이른다. 광주무장봉기의 과정을 찬찬히 돌이켜 보라! 불과 5월20일로부터 5월22일에 걸쳐 얼마나 급속하게 무장대오가 창출되어 가는가 ! 다이너마이트를 접수했지만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계엄군의 첩자가 뇌관을 뽑아 가버리는 것도 모른 채 다이너마이트의 위력만 믿고 있었던 무장혁명군의 전철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우선 화염병제작법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보라! 그 다음 단계로 사제폭탄 제조법이 급박하게 필요하게 되었을 때 어디에 가서 그것을 알아낼 터인가? 그리고 다이너마이트의 제작, 사용법은 언제 배울 것인가? 우리는 첫째, 무기의 제작 및 사용법에 대해 지금부터 목적의식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숙지해야 한다. 둘째, 무기를 입수할 수 있는 경로를 연구, 조사해 두어야 한다. 셋째, 시가전을 위한 지형의 연구, 조사 작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넷째, 혁명군대의 조직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다섯째, 야전지휘관과 전투적 선동조를 양성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여섯때, 유사시 혁명적 역량으로 전환할 전략 사업장의 장악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일곱째, 군대와 경찰의 민주화 및 우군을 사전에 확보해두는 데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 광주는 폭동의 메카요 붉은 군대의 교두보라는 섬뜩한 생각을 갖게 한다. 겉으로 보면 광주는 계엄군이 쫓겨난 5월21일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6박 7일 동안만 해방구였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광주는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는 영원한 해방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2012.2.7.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회사소개  |  이용안내  |  이용약관  |  개인정보정책  |  제휴안내
Copyright (c) Koreaportal.com All rights reserved.
Web Analy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