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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칼럼] 가을단상

꽃보다 고운 낙엽들이 비에 젖은 가을산이 곱다. 계곡마다 붉게 토해낸 가을 빛깔로 산들이 붉게 탄다. 한폭의 산수화같은 산, 안개 품은 계곡마다 배 띄워라! 깊디깊은 심연의 바다 흐른다. “지심귀명래라”(지극한 마음 하나 데리고 나 고향으로 돌아감니다.) 낙엽들이 쓰고 간 그 한마디….

마음에 초막하나 짓고 풍진 세상 버리고, 한잎 낙엽되어 붉게 탄 갈잎속에 묻히고 싶었다. 가을이 깊은 산속에서 한밤을 지새면서 세속의 덧옷을 벗어버리고, 문명의 덧옷을 다 벗어버리고, 그냥 갈잎새되어 어디론가 훌쩍 길떠나고 싶은 나그네 마음이다. 누가 키웠는가. 잎새 하나 건드리지 않아도 그대로 꽃이요, 잎이요, 낙엽으로 살다가 홀로 길 떠난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귀도 막고, 눈도 감고, 벙어리 되어, 깊은 산 흐르는 바람처럼, 낙엽처럼 살수 없을까. 맑음이 흐르는 계곡마다 물흐르고, 갈잎 사이로 서둘러 길 떠나는 바람을 맞으러 간다. 가을에는 구름따라, 물 따라, 바람 데리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길 떠야하리.

며칠전 비에 젖은 헬렌 조지아 낙엽쌓인 계곡에 묻혀 한밤을 지샜다. 가을 나그네라더니 날 저믈고, 계절의 문턱에 서서 생각이 깊어진다. 가을에는 잊혀진 사람도, 잊어야 할 사람도 초대하지 않았는데, 바람처럼 찿아와 왜 내 가슴을 후비는가. 가을 잎새에 마음 담그면 누구나 시인이 되어, 구름이 되어, 깊은 산 초막에 나그네되어 잠시 머믈다 간 바람 소리인가.

붉게 탄 가을 잎새들이 쓰고간 시를 읽으며 속세에 잊혀진 내 영혼 하나, 갈산에 묻혀 한밤을 지새고 싶었다. 어느 시인이 영혼 불타는 갈 잎새들보다 더 장엄한 서사시를 쓸수 있을까. 비에 젖어 산빛이 더 뚜렷하고, 깊은 나그네 가슴 먼 향수에 젖어 돌이킬수 없는 옛 추억에 젖어본다.



왜 가을빛은 알수없는 슬픔이 스며있는지 모른다. 몇년전 러시아의 볼가강을 여행하면서 갈빛에 타는 장엄한 저녘 노을속에 어디론가 길 떠나는 갈 철새들을 잊을수가 없다. 볼가 강가의 불타는 가을 빛, 여기가 철의 장막 러시아인가 싶었다. 톨스토이가 어린 시절 살았다는 볼가강가는 억새풀이 무성하고,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했다. 나는 세기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고향, 볼가강 그가 살았던 그 강기슭을 내 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볼가강가 해는 서산에 기울고 석양에 작은 돛단배에 가족을 싣고 어디론가 길 떠나는가,낙엽같은 작은 쪽배를 잊을수 없다. 유유히 흐르는 볼가강, 초승달도 뜨고지고, 이념도, 지식도, 사상도 없었다. 갈빛에 타는 무아의 경지, 달빛속에 소리없이 강이 흐르고, 가난한 나그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강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자연의 품속엔 자유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시베리아행 녹슨 기차역에는 어디론가 길 떠난 나그네들 발길이 서성였다. 닥터 지바고가 그리운 여인 라라를 마지막 보고 숨을 거둔 그 기차역엔 지금은 낮선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사랑하던 그 사람은 가고 없어도 전설처럼 사랑은 남아 지금도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꿈, 낭만, 추억들이 살아서 가슴 절절한 계절이 가을인가. 가을이 되면 잊을수 없는 향수는 내고향 마을 그리움이다. 가을에는 내 고향집 지붕 위에 내 어머니 사랑이 담긴 빨간 고추가 널려있고, 울타리엔 태양 자국같은 머리까만 해바라기가 태양처럼 걸려 있었다. 온갖 추수가 마당 가득한 가을, 구리빛 타는 얼굴의 농부였던 내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살아있다. 산계곡마다 하얀 들국화를 수없이 꺾어다 소주병에 꽂아놓았다. 하얀 들국화는 가슴 시리도록 눈부신 내 소녀 시절 문학소녀의 향수의 꽃아니었던가.

왜 가을은 수많은 추억들을 다시 불러오며 돌이킬수없는 꿈, 추억속에 슬프도록 가슴시린 비극의 계절인가. 가을빛에는 한생을 눈부시게 살다가 마지막 돌아가야 할 인생의 정점이 가까워 옴을 절감하는 예수에 젖은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한생의 태동, 봄, 여름을 보내고 조금은 철이 든 자아를 깨닫는 계절, 어디론가 귀의하고 싶은 존재의 깊은 심연을 장엄한 모습으로 길 떠날 때 가을 낙엽이 보여준 탓일까.

지구 별에서 가장 장엄한 내 조국, 불타는 금강산도 내 생애에 꼭 한번보고 싶은 산이다. 우린 무슨 한을 안고 태어난 민족이기에 60년 한의 세월 동안, 그리운 부모를 하룻길 사이에 두고 생이별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가. 지난달 북한의 노모를 반세기만에 만나고 다시 헤어져야하는 내 조국 형제들의 한의 눈물을 보았다. 놀라운 것은 우리 조국 국민들의 냉정한 모습, 국회 의원들의 냉정한 마음이었다. 함께 통곡하고 가슴아파하는 것이 우리 민족 아닌가. 정없이 차디찬 사람들의 남의 일 보는듯한 시선들이 가슴 아팠다. 국정 교과서 문제로 혈안이 된 국회 졸부들이 조국 분단의 한의 아픔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조국통일의 염원이 절실하지 않음을 보았다. 구순의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며 헤어져야 하는 피맺힌 부자간의 울부짖음을 보며, 온 국민이 가슴으로 울어야하지 않을까.

산에 머물면 마음의 심연도 깊다더니, 왜 이 가을에는 가슴에 멍에와 아픔들이 아프게 서성이는가. 인간은 누구나 어느 순간 갈 나그네 되어 가을의 문턱에 마주서서 일출보다는 장엄한 일몰을 반추하게 된다. 인생은 짧다지만 한생이 영겁을 사는 위대한 한생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삶일수도 있다. 불타는 가을산처럼 마음의 보석을 갈고 닦아서 장엄한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수있아보자. 가을은 하루하루가 평범하지만 축복이 넘치는 순간들이요, 감사가 넘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날 저물고 가을 바람 스산한데 시간의 빈터에 서서 황홀한 이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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